“사람의 나이, 경력, 직업, 백그라운드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Fireside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결국 중요한 것은 큰 꿈, 실행력, 그리고 열정이라는 것을 느꼈죠. 이곳에서 선한 영향력이라는 순수한 동기가 원동력이 되는 사람들을 만났고 사람을 보는 시각이 바뀌었어요.” - 현병익 님
여러분의 ‘삶을 바꿔준 순간’은 언제인가요? 찬란히 빛났던 학창 시절, 잊지 못할 여행, 혹은 직장 상사에게 혼나 가며 버텼던 주니어 시절 등 다양할 텐데요.
오늘의 주인공 병익 님의 ‘삶을 바꾼 순간’은 Fireside의 멤버이자 운영진으로 함께한 3년이라고 합니다.
Fireside에서 배운 Pay-it-forward의 가치, Zero to One으로 함께 해낸 일들, 그리고 Fireside에서 만난 자신의 신념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의 삶을 바꿔 놓았다고 하는데요. 어떤 이야기인지 함께 들어보시죠.
코딩 멘토링을 진행한 학생과 현병익 님(오른쪽)
현병익 님은 삼성전자에서 개발자로 근무 중입니다. Fireside의 초기 멤버이자 운영진으로 3년 간 단체를 운영했습니다.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으며, 대학생 시절 한인 취업 멘토링 단체인 Korean Engineering Student Association 참여한 바 있습니다.
1. Fireside에 합류하기까지
Q. Fireside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처음 Fireside에 참여한 계기는 우연이었어요. 21년 1월 대학교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던 중 룸메이트로부터 도움 요청이 있었어요. 룸메이트는 이세종 님이 만든 한반도정책컨센서스 NGO 활동을 했던 지인이었고, 당시 초기의 Fireside를 운영 중이던 세종 님은 Zoom Call로 진행되던 멤버 간의 만남을 자동화할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었죠.
무엇보다 저는 단체 자체가 ‘Pay-it-forward’를 추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움이 된다면 최선을 다해 도움을 줘야한다고 생각했죠. ‘Random Call을 통해 멤버들을 만나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미팅’을 진행 중이었던 Fireside는 Mutual을 제외한 미팅을 자동화 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필요했고, 저는 간단한 함수 기반 프로그램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계기로 자연스레 Fireside의 개발자로 참여하게 되었어요.
Zoom Call로 진행한 초기 Fireside 모임 (출처 : 이세종 님)
Q. Pay-it-forward라는 가치에 공감을 하셨군요?
네, 저도 살면서 도움을 받은 적이 많거든요. 저는 한국에서 고등학생 때 갑작스레 홀로 미국으로 유학을 갔었어요. 혈혈단신이던 제게 수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어요.
고등학생 시절 교장선생님의 아버님이셨던 Dr.Harmon은 수학을 잘했던 제게 도움을 주고자 직접 대학수학 과정을 가르쳐 주시기도 했고, 대학생 시절 잠시 제 거처가 불안정했던 시절 한 교회의 부부는 제게 살 곳을 마련해주시기도 했어요. 언젠가는 이 은혜를 사회에 보답해야 한다 믿었죠.
병익 님의 은사 Dr.Harmon (출처 : 현병익 님)
고등학교 친구들과 한 컷 (출처 : 현병익 님)
하지만, 살다보면 도움의 가치를 잊기도 해요. 저 또한 대학생 시절을 보내며, 좋은 학교, 좋은 학점, 좋은 직장으로의 취직을 생각하며 ‘강박적인 삶’을 살고 있었죠.
그때 Fireside를 만난 거예요. 이때 제 삶과 Pay-it-forward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됐어요. 지난 날을 돌이켰을 때, 인생의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주변인의 도움 덕분에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것을 깨달았죠. Pay-it-forward라는 서로 돕는 문화를 한국에 전파하고자 하는 세종 님의 순수한 진심에 깊이 공감했고, Fireside의 운영진으로 합류하기로 결심했어요.
2. Fireside와 함께 만든 일
Q. Fireside 웹서비스 개발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Fireside에 합류 후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일은, 기존 Zoom Call로 진행되었던 멤버들 간의 만남을 서비스를 통해 자동화하는 것 이었어요. 플랫폼을 통해서 멤버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고 서로 간의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자 했죠.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약 1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팀에 합류했었고 또 떠나갔어요. 가설 수립, 모델 검증, 서비스 기획의 과정을 반복했고 저 또한 지치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언젠가 Pay-it-forward의 가치를 믿고 함께 할 동료가 있을 것이라 믿었어요. 결국 오랜 노력 끝에 영준님, 규원님, 성민님, 용빈님, 태웅님, 인아님, 희준님이 합류하며 웹서비스를 만들 팀이 꾸려졌죠.
그 다음은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기억이 안 나요. 하하.(웃음) 6개월 간 퇴근 후 밤샘작업의 반복으로 ‘22년 7월 9일 웹서비스를 론칭했었죠. 아쉽게도 비록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숙원 사업을 마무리해서 시원해요.
Q. 또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해밀학교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스타트업 멘토링 Project-01이 기억나요. 그간 ‘멤버 간의 도움’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본 프로젝트는 단체 외부로의 Pay-it-forward 활동의 시작이라 느꼈어요.
당시 행사는 대장정이었어요. 서울대학교, 스파르타코딩클럽, 그리고 마루180(D3Jubilee) 견학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기획하고 필요한 예산을 모금했죠. 이때 많은 Firesider분들이 후원을 해주셨는데 다시 한 번 Pay-it-forward의 힘을 느꼈어요.
덕분에 해밀학교 학생들이 즐거운 견학을 했어요. 저 또한 너무 기뻤고, 행사 이후에는 런치클럽 행사를 통해 해밀학교 김인순 이사장님과 Social Impact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인연을 이어가고 있어요.
런치클럽 행사 중 현병익 님과 김인순 이사장님(왼쪽에서 3번째)
3. Fireside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배운 점
Q. 어떤 사람들을 만났고, 어떤 교훈을 얻었나요?
Fireside에서 만난 사람들은 ‘큰 꿈, 미친 실행력, 선한 영향력’으로 요약할 수 있어요. 멤버들은 모두 나이, 경력, 직업, 백그라운드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Edge가 있는 분들이었죠.
많은 분들을 만났지만 그 중 가장 큰 교훈을 얻은 만남은 Fireside의 대학생 운영진과의 만남이에요. 성민님, 태웅님, 희준님, 인아님은 제가 존경하는 분들이에요. 웹서비스 기획이 한창 바쁠 때 합류하셨고, 나이가 어리다는 생각에 초반에는 걱정도 했어요. 하지만, Professionality를 발휘하며 저 보다 더 큰 기여를 하시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중요한 것은 사람이 가진 열정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Fireside 전/현 운영진 인아님(왼쪽 1번째), 희준님(왼쪽 2번쨰), 태웅님(왼쪽 5번째), 성민님(왼쪽 6번째)
Q. 최근 다녀오신 일본 여행도 도움을 공유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들었어요.
최근 일본 여행을 가면서 동경대 창업동아리 및 창업지원센터, 와세다대 창업동아리 및 영어동아리, 게이오 대학교 창업동아리, 메이지 대학교 한인동아리에 연락을 했어요. Fireside를 통해 한국의 창업 생태계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고, 이웃나라는 어떤지 궁금했죠.
그리고 이번 만남을 통해서 혹여나 제가 직접 도움을 줄 수 있거나 도움을 연결할 수 있다면 Pay-it-forward를 실천하고자 했어요. 모두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몇몇 동아리와 연락이 되어 Zoom Call을 앞두고 있어요. 혹여나 Firesider 멤버 중 도움을 연결하고자 연락을 드릴지도 모르겠네요. 하하(웃음)
Q. 앞으로의 삶에서도 Pay-it-forward가 녹아 있을까요?
Fireside에서의 3년은 제 삶을 바꾼 순간이에요. 물 흐르듯 살아가던 제게 Pay-it-forward의 가치를 일깨워줬어요. 또한, ‘오히려 남을 돕는 사람들이, 더 큰 도움을 받고 더 성공적인 삶을 산다’는 것을 느꼈죠. 당연히 앞으로의 제 삶에도 Pay-it-forward는 함께할 생각이에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주변에, 그리고 사회에 도움을 나누고자 해요. 이러한 마음은 Firesider 모두 같을 거예요. 우리 모두 함께 한국에 Pay-it-forward 문화를 전파해 보시죠!